얼마전에 투이타에다 이런 잡상을 싼 적이 있는데, 다시 한 번 정리를 좀 해보자면 해외 취업 내지는 이민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 딱 세가지가 있다. 하나는 영어, 다른 하나는 생활 방식, 그리고 개발 실력. 지금 한국 돌아가는 상황이 참 그지같아서 너도 나도 해외로 나가고 싶어하는데, 순간적인 감정으로 "에라이 드러운 놈의 세상. 내 차라리 한국 뜨고 만다!" 하는 건 담배 한 대 피고, 쏘주 한 잔 마시고 하룻밤 자고 나면 사라지는 거고, 조금 더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위의 두 가지는 최소한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한다.
영어
영어는 정말로 잘 해야 한다. 근데, 여기서 이 잘의 기준이 사람들마다 제각각이라서, 계량화 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내 기준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인터뷰를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의 영어 능력은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잘 못 알아들을까 걱정이다? 행복한 고민. 일단 취업 걱정부터 먼저 하도록 하자. 일단 취업을 하게 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 회사에서 어쨌거나 일을 한다는 거고, 그러다보면 업무에 쓰는 영어는 다 거기서 거기이므로 처음엔 뭔소린가 싶어도 조금 지나면 눈치 코치로 다 하게 되어 있다. 문제는 인터뷰 영어. 그게 전화 영어가 됐든, 대면 영어가 됐든 일단 내가 어떤 사람이란 걸 약을 팔아야 할 것 아닌가?
어떤 사람은 영어 못해도 개발자는 코딩으로, 실력으로 보여주면 된다고 하는데, 저어어얼대로 그런 말에 넘어가면 안된다. 당신만큼의 실력을 가진 개발자는 쌔고 쌨다. 코딩으로 보여줄래도 일단은 회사에 들어가야 보여주든가 말든가 하지. 그럼 또 어떤 사람은 깃헙 같은 곳에서 오픈소스 커미터가 되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데... 누가 당신 커밋을 맘대로 풀리퀘 받아준다고 그러든? 오픈소스 커뮤니티는 코드 그 차제가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내 커밋을 승인 받으려면 그만큼 당신의 코드를 설득해야 한다. 뭘로? 영어로. 어떻게? 글로 써서.
그리고, 한국에서 영어를 준비하고 외국으로 나가도록 하자. "외국에서 살면서 부대끼다 보면 영어가 늘겠지" 하는 생각은 굉장히 낙천적인 관점이다. 돈이 아주 많거나, 시간이 아주 많거나, 세상 만사가 긍정적이거나 하지 않다면 열에 아홉은 실패하는 방식이다. 굉장히 운이 좋거나 해서 성공한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런 사람들의 경험담이 전체 성공담 중에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할까? 준비되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너무나도 높다. 혹자는 "그럼 언제까지 준비만 하란 말이냐? 그러다가 영영 나가지 못한다" 라고도 하는데, 그러니까 제대로 준비하라는 거다. 준비란 단지 영어 능력만 준비하라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플랜 A, 플랜 B, 백업 플랜 등... 철저하게 계획해서 그 안에서 영어 능력이 차지하는 비중까지도 고려해 보고 영어 능력이 100% 준비되면 좋겠지만, 현재 계획 아래에서는 일단 60% 정도만 준비가 된 상태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는 등의 자기 평가에 대한 확신이 서는 시점이 바로 준비가 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현지에서 이민 생활 하시는 분들을 직접 보고 듣고 하면 아이고... 드라마가 따로 없다. 그런데, 실패하는 분들의 대부분은 철저한 준비 없이 "에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넘어온 사람들이라는 거. 한국 사회 자체가 인생 뭐 있나? 한방이지 식의 로또 심리가 만연해서 그런지 몰라도 실제로 이런 분들 엄청 많다. 그게 또 혼자 넘어오는 거라면 상관이 없는데, 배우자에 아이들에... 딸린 식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책없이 넘어오는 분들이 많은 거 보면... 내가 그들 삶에 개입할 수 없으니 그저 바라보는 수 밖에...
생활 방식
어차피 지금 해외로 넘어가서 취업하고 이민하고 등등을 구상하는 사람들은 이민 일 세대이다. 이민 일 세대에서는 많은 걸 바라면 안된다. 아주 돈이 많거나 네트웍이 넓거나 하지 않는 이상, 시쳇말로 달랑 불알 두 쪽 차고 넘어가서 맨 땅에 헤딩해가면서 사는 건데, 한국에서 살단 대로 살면 정말 힘들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이 됐다 하더라도 한국 생활 방식 그대로 사는 건 정말 비추.
일단 내 가족이 전부다. 무슨 일이 생겨도 내 가족을 돌볼 사람은 내 가족 뿐이라는 거다. 한인 커뮤니티? 많은 걸 바라면 안된다. 그 커뮤니티에 있는 다른 가족들도 내 가족이랑 사정이 비슷하면 비슷했지 나은 집 몇 없다. 한국에서야 필요하면 시댁(혹은 친가) 또는 친정(혹은 처가) 등에 손이라도 벌릴 수 있지, 해외에 나가 살면 그게 가당키나 할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서로 부담이 되기 때문에 힘들다. 생활 자체가 팍팍하니 까딱 잘못하면 집안 풍비박산 나는 경우가 많을까 적을까? 외벌이만으로도 가능할만큼 한 사람이 잘 벌면 나을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부부가 맞벌이를 해야만 어느 정도 생활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사 분담은 필수나 마찬가지 등등... 한국과는 전혀 다른 생활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한국의 밤문화는... 잊자. ㅋ 그런 거 없다.
개발 실력
어쩌면 이 개발 실력은 위에 언급한 세가지 중에 가장 중요도가 낮을 수도 있다. 당연히 개발자라면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어떤 업무를 했던 간에 업무외 시간에 어떻게든 개인적인 시간을 들여서라도 최신 개발 트렌드를 준비해 놓도록 하자. 그게 개발 방법론이 됐건, 최신 언어가 됐건, 프론트 엔드가 됐건, 백 엔드가 됐건 무엇이든 최신 개발 트렌드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라도 한번쯤은 따라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래야지 인터뷰 때 한마디라도 더 할 수 있다. 내가 끊임없이 뭔가 새로운 쌈빡한 것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인정 받을 수 있다.
이쯤 되면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반응들이 "그건 아는데, 시간이 너무 없어". 안다. 한국 사회에서 특히나 개발자라면 정말 시간이 없다는 거. 그런데 누구에게나 다 똑같은 24시간이다. 그 24시간을 누구는 쪼개서 효과적으로 쓰고, 누구는 흘려 보낸다. 여기서 내가 시간을 효과적으로 쓰지 못한다면 금쪽같은 내 시간을 버리는 것이고, 결국 나는 뒤쳐진다. 해외에서 일한 기간이 그닥 많지는 않지만 얘네들 슬렁슬렁 일하고 다섯시 땡하면 칼퇴근하고 하는 것 같아도 프로젝트는 제 때 끝난다. 그만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쓴다는 것이다. 물론 얘네들도 지들이 필요하면 늦게까지 남아서 야근하고, 지들이 필요하면 자료 찾아 가면서 계속 공부하고 한다. 과연 한국에서 개발자들은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 해야만 한다. 잠을 줄이라는 것도 아니고, 효율적인 시간 관리를 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