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인 페북에 돌던 흑형 얘기를 보고 그 밑에 달린 리플들을 보다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새삼스레 오늘 놀랬던 것이, 한국에서 흑형
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월한 유전자
라는 표현 자체를 굉장히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들이 인종 차별적인 요소 혹은 인종주의적인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면 오히려 그런 말을 하는 나를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새로왔다. 흑인을 좀 더 친근하게 부르고자 하는 의도를 내포하는 단어로서 흑형
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 있던데, 그런 사람들 중에는 한국을 떠나 현재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서 또 하는 말이 흑인이 가진 유전적 우월성이 부럽기 때문에 형
이라는 단어를 붙여 흑형
이라고 한단다.
여기까지 보고 나서 "도대체 뭐가 문제임?" 하는 사람들이라면 스스로 인종주의자가 아닌지 되짚어 봐야 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일단 사람을 피부색으로 구분하는 자체가 인종주의의 한 특성이다. 호주 뿐만 아니라 다른 서양 사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피부색, 성 정체성, 장애 등으로 구분짓는 것 자체가 소수자에 대한 차별 내지는 인종 차별의 요소로서 판단한다. "차별"이라는 단어는 상대적인 것으로서 "나는 너와 다르다", "나는 너보다 우월하다", "너는 나보다 열등하다"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차별과 차이는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종이 한 장 차이이다.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 까지는 허용이 가능하지만, 거기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 순간 그 때부터는 그것이 차별이 된다.
그렇다면 이른바 "흑형"은 어떤 문제가 있는 단어일까?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 대하지 않고, 피부색에 근거하여 나와 다름을 구분짓는 데서 문제가 있다. 또한 흑인이라는 단어에 들어있는 어떤 스테레오 타입을 규정한 후, 그걸 나보다 우월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구별하는 것에서 이미 인종 차별적인 단어가 되는 것이다.
살짝 다른 얘긴데, 뉴질랜드 국대 럭비팀은 "올블랙스 All Blacks"로, 축구팀은 "올화이츠 All Whites"로 불린다.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는 하는데, 미국 사람들이 들으면 기겁을 하는 팀명이기도 하다. 대놓고 블랙/화이트를 얘기하니까 그렇겠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올블랙스는 마오리 출신의 검은 피부를 가진 선수들이 주로 국대에 포진해 있고, 올화이츠는 주로 백인들이 국대에 뽑히는 편이니까 더더욱 그럴게다. 미국 사람들이 경계하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블랙과 화이트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팀의 구성원들의 어떤 인종적 특성과 절묘하게(?) 어우러지기 때문에 인종주의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뉴질랜드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거기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 한국에서 흑형
이라는 단어가 갖는 위상과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그 흑형
을 말하면서 빠짐없이 나오는 옹호논리들 중 하나가 유전적 우월함
내지는 우월한 유전자
라는 표현이 있다. 차별
이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우월
이라는 단어는 비교의 단어로서 반드시 열등
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즉, 어느 하나가 우월하다면 다른 것은 열등하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사실 더이상 논의를 진전시킬 수가 없다. 우월한 유전자가 존재한다? 그딴거 없다. 유전적으로 우성과 열성이 존재한다? 그 우성은 확률적으로 더 자주 나타나는 형질을 의미하지 그게 열성에 비해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대머리가 우성인데, 대머리 아저씨들은 죄다 우월한 존재인가? 기왕 언급하는 거 계속 흑인을 예로 들자면, 예전에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냥을 하기 위해 언제든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 발달한 형질일 뿐이지 그게 우월한 것하고는 상관이 없다. 그 사회에서는 그게 우월했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 형질이 농경 사회였던 동북아시아에서도 여전히 우월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에스키모들은 추위에 견딜 수 있는 능력이 더 강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에스키모들이 더 우월한 존재인가?
누군가 유전적인 우월함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에 대한 반론은 얼마든 제기할 수 있다. 결국 유전적인 우월함이라는 것 자체가 틀린 표현이고 옳지 않은 표현이다. 내가 남에게 구분지음을 당하는 것(표현이 이상하긴 하다만)은 차별이고, 내가 남을 구분하는 것은 친근한 표현인가?
어떤 사람은 이런 식으로도 얘길 하더라.
흑형
이 처음엔 그런 어원을 가졌을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좀 더 일반적인 의미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제는 인종 차별적인 요소는 더이상 남아있지 않다. 이제는 재미로 쓰는 단어 아닌가?
그럴 수도 있겠다. 우리가 잘 아는 곳들 중 하나가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더라. 일베라고.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유전적인 우월함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 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우월함이라는 가치로 포장되어 나타날 뿐이다. 흑형
이라는 단어에 들어있는 묘한 어떤 체력의 차이, 체격의 차이를 우월함으로 포장하는 사회 역시 존재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야만이라고 부른다. 그러한 야만의 사회에서 우리는 인종 차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