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10년

지난 2015년 7월 18일은 내가 호주땅에 발을 디딘지 만으로 딱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회고 차원에서 간단하게 적어볼까 한다. 요즘은 맨날 블로그 포스트가 회고야

요양겸 어학연수

한국에서 떠나기 전 몸이 굉장히 안 좋았더랬다. 사범대 졸업하고 처음에는 HR쪽 일하다가 갑자기 개발자가 되고 싶어서 모시던 팀장님께서 개발팀 PM으로 전배 가시길래 졸라서 덩달아 따라갔다. 당연히 개발 관련 지식은 전무했지. 개발 부서로 갔으니 뭔가는 계속 개발을 하고 있는데, 이게 아는 게 없으니 맨땅에 헤딩해 가면서 삽만 팠다. 덕분에 스트레스는 만빵. 결국 몸이 고장났단다. 무조건 쉬랜다. 그래서 무작정 호주로 건너왔다. 건너온 김에 어학연수도 좀 하고. 휴직 기간을 더 연장하려고 했는데, 일개 대리 쪼가리 직급으로는 최대한 할 수 있는 기간이 6개월인가였다. 그래서 퇴사. 기왕 온 거 공부라도 더 하자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생활

대학원에 진학하려면 IELTS 시험 점수는 필수. 당시 요구 점수는 아카데믹 6.5점이었다. 근데, 시험을 쳤는데 6점 밖에 안 나온 거라. 방법이 있댄다. 대학에서 지정하는 브릿징 어학연수 3개월을 이수하면 0.5점 쳐준댄다. 어차피 어학연수 하는 거 더 하지 싶어서 3개월 더 했다. 그 전 3개월 어학연수와는 그런데 차원이 달랐다. 처음 3개월 받은 어학연수는 뭐랄까… 그냥 영어 생활권에 익숙해지게 하는 정도의 느낌이었다면, 이 브릿징 코스에서 받은 어학연수 3개월은 본격적인 대학생활에 필요한 글쓰기, 논문 읽기, 발표하기, 강의 요약하기 등의 특화된 과정을 중점적으로 배웠는지라 이게 오히려 대학원 생활에 굉장한 도움이 됐다.

그래도, 대학원 첫학기 처음 숙제였던 에세이 1천자 쓰기는 폭망. 10점 만점에 5점 나왔다. 튜터의 빨간펜이 난무하는 피드백… 이를 악물고 다음 3천자 에세이에 도전. 이번엔 15점 만점에 14점. 마지막 5천자 에세이는 20점 만점에 21점을 받았다. 1점은 그동안 고생했다며 받은 보너스 점수. 눈물 나더라. 그때 강의해 주셨던 교수님과는 덕분에 눈도장을 잘 받아서 나중에 취업할 때 레퍼런스를 너무 잘 해주셨다. 지금은 은퇴하셔서 시골에 내려가셨는데, 여전히 페이스북에서 인사 드리는 고마운 교수님.

중간에 결혼도 하고 애기도 놓고 하면서 일단은 그동안 벌어둔 돈만 쓰는 분위기. 대학원 일년 등록금이 2500만원-3천만원 정도 하는 상황이었다. 나름 우리사주 주식 보유자였는데, 그걸 야금야금 팔아서 대학원 학비랑 생활비로 충당해서 썼다. 그 우리사주는 얼마전에 상장을 했다더라. 아오 배아퍼라 다행히도 고등학교 때 주입식 교육으로 배워뒀던 수학, 물리, 화학 공식들이 머릿속에 아직도 박혀 있어서 그걸 우리고 우려 먹으면서 낮에는 과외, 밤에는 대학원 공부를 뛰는 생활을 계속 했다. 빡세게 과외를 뛰었는지라 그때 소득이 아마 지금보다 높았을 거임. ㄷㄷㄷ

첫 직장

그리고 결국에는 졸업을 했다. 그와 동시에 운이 좋게도 곧바로 현지 회사에 취업을 했다. 위에 잠깐 언급했던 지도 교수님께서 레퍼런스를 아주 잘 해주셔서 회사에 들어가서도 굉장히 사람들이 좋게 봐 줬다. “니 이력서에서 빛이 나던데?” 하면서…

영주권 및 시민권 취득

그런 와중에 쉽게쉽게 영주권을 준다던 시기의 막차를 타고 어렵지 않게 호주 영주권을 받았다. 이 때도 마찬가지로 지도 교수님과 회사 매니저의 레퍼런스를 받고 기술 심사며 기타 등등을 수월하게 진행헀다. 에이전트 끼고 영주권을 신청할만큼 뭔가 복잡한 상황도 아니고 해서 이민성 웹사이트에 나와 있는 체크리스트대로 서류 준비하고 신청하고 하니까 한 8개월만에 나오더라.

그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님 왈, “너 주민등록 말소됐더라?” ㅡ,.ㅡ;

조국이 날 버렸구나. 그럼 나도 미련없이… 호주 시민권을 받았다. 이제 한국 들어가서 일하려면 꽃미남 비자(F4 비자)를 받아야 한댄다. 한국 정부 인증 꽃미남

끊임없는 이직

첫 직장 이후 지금 직장이 여섯번 째 직장인데, 평균적으로 2년 정도를 한 직장에 다녔던 셈이다. 대충 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평균 기간이 2년 정도라고 하니, 난 호주 직장인의 평균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이지 싶다. 가만히 중간만 가는 가늘고 긴 인생의 처세술 그 중에는 달랑 3주만 다녔던 회사도 있고 3년 가까이 다녔던 회사도 있고…

결국 지금 회사에서는 컨설턴트라는 직책으로 갑님의 회사로 출퇴근을 하면서 을의 인생을 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벌써 호주로 건너온 지 10년이 됐다. 위에 간단하게 회고를 해 보았지만, 사실 더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다. 엄청나게 웃긴 것도 있고, 엄청나게 아찔했던 것도 있고… 그걸 다 쓰자면 신상이 완전 다 털릴 것 같아 어차피 내 신상은 공공재 오픈소스 대충 여기서 마무리해 볼 까 싶다. 앞으로 얼마나 더 호주에서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애기엄마와도 몇 번 얘기해 봤던 것이 이제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있어서 예전 만큼의 두려움이 없어진 만큼, 굳이 호주에서 사는 것을 고집할 필요도 없어졌으니 직장 문제만 해결이 된다면 어느 영어권 국가를 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도대체 어떤 일이 내 옆에서 일어나고 있을까?